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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금기를 넘어, 비건 채식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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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금기를 넘어, 비건 채식의 이유

고용석 2016년 10월 01일 토요일 11:41   0면

 

[특별기고] 10월1일 세계채식인의 날 맞아...고용석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 대표, 한국채식 문화원 공동대표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영양을 취하는 것은 크게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삶의 전제조건이다.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보면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를 발견한다. 배가 고파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은 이 이미지는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신이나 부처를 예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이 신화의 기본구조라 한다, 세계의 모든 신화는 유사하다. 

그러나 삶의 잔혹한 전제에 대해 집단적 고민이나 철학적 문제의식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공장식 사육, 대규모 단일경작, 유전자조작, 정크푸드 등 생명이 조작되고 상품화되는 현실을 비교할 때 신화 속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순수하고 우주적이다. 그때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없고 상호간의 의사소통도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갓난아기에게 동물인형을 갖고 놀게 하고 동물들의 그림책을 보여주는 것은 그 시절의 소통능력을 일깨우려는 우리의 바람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조인류학의 창시자 레비스트로스는 인간들 간의 단절은 앞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이거나 그런 단절의 한 특수한 사례로 여겨야 된다고 주장한다. 동물과 자연과의 분리 이후 음식은 신화로서의 역할을 거쳐 문화의 금기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국제적 베스트셀러 ‘월드피스 다이어트’의 저자 윌터틀 박사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목축혁명을 소개한다. 이 혁명은 수천년에 걸쳐 진행된 인류 역사상 가장 느리고 강력한 혁명이었다.

1만 년 전에 문명의 발생지인 현재의 이라크 북동부지역에서 인류는 최초로 양을 가축화하기 시작했고 염소, 소, 말 등이 차례로 가축화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성하고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생명체는 오랜 기간을 통해 사물-그것으로 축소되기 시작한다. 특히 암컷이 많은 젖과 생식에 관련되다보니 먼저 축소되고 모든 가축이 그 뒤를 따른다. 신성하게 여겨졌던 야생동물도 가축을 노리는 유해동물로 축소된다. 가축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고 인간도 덩달아 축소된다. 암컷과 새끼가 먼저 축소되듯 특히 여성과 아동이 빠르게 축소된다. 대다수의 문화인류학자들도 이 가축화가 인간의 사고와 생활방식 나아가 억압문화의 특징이 심리적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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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찰 귀면상의 원류이자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을 상징하는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 (인도 아잔타석굴) / 사진제공 = 한국채식문화원

특히 인도유럽어족의 조상인 유목민 쿠르칸족의 기원전 4300-2800년에 걸친 3차례의 대이동은  유목부족이 서구사회의 새로운 정복자로 등장하고 곳곳의 정복지에서 자신들의 이념과 생활방식을 강제하는 계기가 된다. 인도의 아리안족, 지중해 연안 비옥한 초생달 지대의 히타이트와 미타니족, 아나톨리아의 루위족, 그리이스의 아케이아족, 나중에 동참한 도위스족 그리고 셈족까지 모두 쿠르칸족의 대이동의 하나였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가늘고 날카로운 청동도끼와 준보석으로 만든 철퇴, 전투용 도끼와 부싯돌 화살촉 등과 함께 청동무기가 등장한 것도 우연히도 쿠르칸족의 이동경로와 일치한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 전 인류최초의 역사적 기록물에는 공통적으로 억압적 가부장제와 사유재산, 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이 등장한다. 자본이란 단어는 소와 양의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카파타’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인류사회에 2가지 제도가 잇달아 발생되는데 하나는 전쟁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을 가리키는 ‘가비아’는 더 많은 소를 가지려는 욕망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노예화다. 전쟁에 승리한 자는 상대편의 가축을 소유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다. 이렇듯 가축화가 가져온 축소와 환원주의 혁명은 전 세계로 퍼져 현재 인류사회의 주류로 자리한 지배적 위계구조를 낳고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경제적 토대와 심리적 기틀도 목축문화에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 폭력투쟁, 계급 간 반목, 여성억압과 경쟁은 인간본연의 특징이 아니고 목축문화와 함께 우리에게 유입된 가치와 관습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목축문화는 오늘날 오히려  제도와 기술의 허울 속 깊은 곳에 모습을 숨기며 광범위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업, 언론매체, 정부, 식품업체, 의료, 제약, 영양학계, 교육 등 모든 제도가 목축문화의 내면화에 총동원된다. 그 결과 정치적 목적으로 지원금을 받아 생산된 싸구려 곡물사료로 인해 가축‘공장’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는 환경과 동물, 인간에게 재앙의 악순환을 안겨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의 인식마저 심하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 본연의 공감과 자비를 마비시켜 생명을 사물과 추상으로 보는 게 지극히 당연한 듯 여기게 된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 황폐해진 생태계 그리고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무엇보다 위에서 부터의 세계화를 등에 업은 콘아그라, 몬산토, 맥도날드, 카킬... 등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파괴적 영향력은 전 방위적이고 지구적이다. 마치 지구 전역에 살인기계를 가동하듯 하루 수십억의 동물을 살해하고 그 파괴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제도적이고 비가시적이어서 그 폭력성을 알아차리기가 더욱 힘든 실정이다. 언론도 하루 수십억의 동물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사실과 그에 따른  생태계와 사회 문화 정신적 파장을 외면한다. 이것이 과연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테러리즘이나 정치적 이슈보다 덜 중요한 일일까.

이렇듯 음식은 자유의사와는 별개로 어릴 적부터 가족과 부모, 사회로 부터 강요당하고 우리는 반복적 식사행위를 통해 사회적 통념과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특히 육식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져 결코 묻고 이의제기해서도 안 되는 문화적 금기로 목축문화의 중심에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이 금기야말로 인간잠재력을 억압하는 문화적 제약의 환상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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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청계광장에서 채식주의자들이 공장식 축산과 육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사진제공 = 한국채식문화원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60년 간 음식과 식습관의 변화이다. 이 변화는 이전 만 년의 느린 변화에 익숙한 우리의 몸과 유전자에도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정도의 변화이다.  작금의 음식문화는 한마디로 생명과 산업의 충돌이다. 소고기와 햄버거 등 음식을 산업화한 결과 매년 17,000개의 새로운 식품이 시장에 등장한다. 육류와 정제가공식품이 범람하고 종의 다양성도 획일화 된다. 식용으로 3,000가지의 동・식물종이 널리 쓰여 왔는데 오늘날은 소수 품종만이 재배된다. 저비용 대량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의 식품정책은 싼 가격에 대량의 칼로리를 공급하는 데 있다. 전체가 부분의 합이라는 환원주의적 사고를 진보라고 여기며 토양의 복잡함도 질소・인・칼륨으로 환원한 결과 예전에 1개의 사과가 갖던 철분을 얻으려면 이제 사과 3개를 먹어야 한다.  영양학과 의학도 사람을 하루에 철분 몇 g을 반드시 섭취해야하는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환원한다. 비만이면서 영양부족이 흔한 이유이다. 

이러한 영양불균형은 심인성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정신질환과 문제행동, 범죄 등도 야기한다. 이미 1977년 미국 상원 영양문제특별위원회는 성인병은 물론 폭력 등의 정신분열증까지도 잘못된 식생활과 영양불균형에 기인하는 식원병이라 보고한 바 있다. 정신의학자 마이클 레서 박사는 신경증 환자의 85% 정신분열증 환자의 67%, 우울증의 95%가 음식이 원인이라고 한다. 영양이 두뇌화학에 실질적 영향을 미쳐 인지기능과 행동에 폭력을 초래한다는 이유이다. 설사 순수한 심인성이라 하더라도 최적의 영양공급은 그 질환이 발현되지 않게 하거나 나타난다 해도 미약한 수준에 그치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식품체계와 동물성음식을 둘러싼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다. 연간 공장식 축산으로 700억 마리의 동물이 처참하게 도살된다. 어류의 50%가 무자비한 공장식 축산의 사료로 소비되고, 해양생물의 20%가 공장식 어업으로 그물에 걸려 그냥 폐기된다. 세계 농지의 80%와 물의 70%가 축산용이다. 세계 식량의 50%가 가축사료로 투입되면서 10억 명은 굶어 죽어가는 반면, 20억 명은 너무 먹어 비만이고 이 중 절반이 만성질환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신약개발을 위해 연간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대상으로 희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위기는 물론 지구온난화 생물다양성 등 온갖 치명적 생태계파괴와 자원고갈을 야기되고 미래의 아이들과 생명들에게 무의식적 폭력과 고통을 부과한다. 뿌리는 대로 거둔다 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무슨 평화를 기대하겠는가! 

이미 유엔(UN)은 21세기 새로운 보건 정책 목표로 만성질환을 설정했다. 인류 보건 최대 목표가 '전염병 퇴치'에서 '만성질환 관리'로 바뀐 것이다. 또한  2010부터 세계가 기아와 에너지 빈곤,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식 위주 식단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2050년 전 세계 인구가 91억명으로 증가한다고 전제할 때, 육류와 유제품 위주로 짜인 서구식 식단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체가 가능한 화석연료와 달리 인간은 식량 문제를 굶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인류는 합리성과 진보의 이름으로 서구식 식단을 맹목적으로 쫒아왔다. 소위 과학과 영양학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이제 서구식 식단은 극복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낳는다는 의미로 ‘맥도날드화’란 개념까지 나왔을까.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전통음식에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그러나 더 크고 깊은 통찰을 통해 오늘과 내일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삶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꿔야 하고 마음을 바꾸려면 음식을 바꿔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서구식 식단의 극복은 음식을 넘어 사고방식 즉 문화의 전환일 뿐 아니라 음식과 인간 지구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하는  역사적 소명이다. 

음식의 잠재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한 어느 문명도 기후변화와 생태계파괴로 인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작금의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 위기 또한 예외가 아니다. 많은 석학들은 어찌하던 인류 문명이 이번 세대에 유쾌한 방법이던 불유쾌한 방법이던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문화와 사회의 공적 담론에 대한 이의제기이자  해방으로서의 음식, 비건(Vegan, 완전채식)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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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한국의 채식주의자 수백명이 채식으로 지구와 생명을 구하자는 내용의 비건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행사는 전세계 25개국 이상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오후 2시께 동시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사진제공 = 한국채식문화원
만약 동물성 음식을 먹을 때 마음을 다해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온전한 정신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것을 거부한다. 이와 같은 식사에 대한 회피와 부정의 관습은 우리 삶의 공적 사적 영역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으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피와 부정의 관습은 우리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태계 파괴, 소비지상주의, 여성억압,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등과 같은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한다. 비건(완전채식)은 이런 문화적 제약의 환상의 틀을 뛰어넘는 영적 자각이다. 우리자신과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비건은 지구를 보전하고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적이고 깨어있는 삶의 방식이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잘 살기위한 철학적 문화이다. 그리고 종차별을 넘어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한 생명이라는 확장된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생명의 존엄성에 기초해 모든 생물과 공존을 추구할 때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한 법이다. 또한 비건은 인류와 인간의 본성에 공감적 특성의 씨앗을 발현한다. 

옛날부터 채식은 몸의 건강과 치유를 넘어 투명한 의식을 촉진시키며  평화로운 마음과 깨어있는 높은 의식의 삶으로 변화하는 기본이다. 사랑과 치유가 일어날 수 있도록 내면의 공간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기 위한 식사법이다. 또한 평화와 생명 협력 비폭력 등의 내면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제 현대과학과 환경운동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산업화의 무한질주를 제한하는 규제 위주에서 근원적 차원의 생태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주가  완전한 상호의존 체계이며, 만물은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 존재자체에 구멍을 뚷어놓는 짓이 된다는 인식이다. 현대의 비건(완전채식)운동은 이러한 인식이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과 무관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이 일상의 통찰과 인식의 질은 일반적 지식과는 달리 내면의 사랑과 자비에 그 앎의 근원을 둔다. 그리고 새로운 인식을 내면화하고 윤리적으로 실천하게 할 뿐 아니라 모두를 삶과 생명의 그물망으로 연결한다. 

이런 음식과 상호의존성, 음식과 문화 그리고 영성에 관한 깊은 통찰은 고대 아힘사(Ahimsa)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영적 선각자뿐만 아니라 미국 초월주의 진보적 지식인그룹에 의해 이미 시작되어왔다. 대표적 인물이 에머슨과 소로우 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의 선구자들이다. 생명체에 대한 연민에 기초한  긍정적 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한 진보적 선구자들이다

실제로 우리는 생명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이다. 깊게 바라보면 오늘날 환경과 문화・정치・경제 등의 총체적 위기의 근본 원인도 영성부족에 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영성은 상호의존성의 자각이며 영성의 회복은 자비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건은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심과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마음살피기에 기초한다. 이름만 비건일 뿐 사실상 상호의존성 자각의 한 표현이다. 만약 상호의존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비건은 이 세상과 인류, 다음 세대와 동물,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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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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